故 송대관 슬픔 속 영면…태진아 “잘 가, 영원한 내 라이벌” 추도사
컨텐츠 정보
- 39 조회
- 1 댓글
- 목록
본문
트로트 4대 천왕으로 불리며 수많은 히트곡을 남긴 가수 송대관이 영면에 들었다. 후배들은 따뜻했던 가요계의 큰 별을 추모하며 큰 슬픔에 빠진 채 눈물로 고인을 떠나보냈다.
9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는 송대관의 영결식과 발인식이 진행됐다. 대한가수협회장으로 치러진 영결식에서는 공동 장례위원장을 맡은 태진아와 이자연 대한가수협회장이 각각 추도사와 조사를 전했다. 사회는 대한가수협회 복지위원장 염정훈이 맡았으며 후배 가수 설운도와 강진도 애도사를 낭독했다. 김창열·한지일·김성환·이숙·박상철 등이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태진아는 추도사에서 “3일 동안 밥을 안 먹고 술로 배를 채웠다. 형님이 하늘나라로 가시면 방송하는 게 별로 재미도 없을 것 같다”며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좋은 곳에서 편안하게 잘 계시고 제가 갈 수 있는 좋은 자리도 만들어 달라. 그럼 제가 언젠가 형님 곁으로 가겠다”고 인사를 건넸다. 송대관과 라이벌 디너쇼를 계획 중이었다던 태진아는 “세트리스트 정리 중이었는데 그다음 날 돌아가셨다고 하더라.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며 슬퍼했다. 끝으로 그는 “대관이 형 잘 가, 영원한 나의 라이벌이여”라고 외치면서 고인의 영정에 손을 흔들었다.
조사를 맡은 이자연은 “황망하게 떠나가신 선배님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다. 따뜻한 미소, 구수한 사투리, 친근감, 친척 오빠, 옆집 아저씨, 항상 그런 분이셨다”고 고인을 추억했다. 이어 “쨍하고 ‘해뜰날’, 우리 국민이 너무 가난한 시절에 꿈과 희망을 준 원동력이 됐다. 저 역시도 해뜰날이 되도록 꿈을 키워왔다”고 눈물을 보였다. 이자연은 “그동안 너무 고생 많이 하셨다. 아프지 말고 이제 모든 짐을 훌훌 털고 편히 쉬시길 바란다”며 “오빠, 선배님, 안녕히 가십시오. 사랑합니다”라고 인사했다.
설운도는 “가요를 사랑받게 해주신 분이다. 저도 서울에 가수 데뷔했을 때 정말 우러러봤던 선배님이셨고 같이 활동도 하면서 참 많이 배웠다”고 고인을 떠올렸다. 그러면서 “저쪽에서는 정말 행복하게 사셨으면 한다”며 “평생 힘들게 노래하셨기 때문에 이제는 편히 영면하셨으면 한다”고 영정을 향해 묵례했다.
발인식에서는 태진아, 설운도, 강진 등 연예계 동료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고인의 관을 운구했다. 발인식이 엄수된 후 고인은 서울추모공원을 거쳐 경기도 안성 유토피아추모관에서 영면에 들었다. 송대관은 지난 7일 오전 10시쯤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고인은 전날 몸이 좋지 않아 급히 서울대학교병원 응급실로 이송돼 치료를 받았으나 끝내 숨졌다. 향년 79세.
갑작스러운 비보에 가요계는 큰 슬픔에 잠겼다. 태진아를 비롯해 하춘화·정수라·이자연·강진·혜은이 등 수많은 가요계 동료들이 조문했다. 나훈아·정훈희·조용필·임영웅·영탁·손태진 등이 근조화환을 보내며 애도의 뜻을 전했다.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박영선 전 의원 등 정계 인사들을 비롯해 가수 양지은, 김수찬, 태진아의 아들 가수 이루 등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고인을 기렸다.
1946년 전북 정읍 출신인 고인은 1967년 ‘인정많은 아저씨’로 데뷔했다. 무명생활을 이어가던 송대관은 1975년 해뜰날을 통해 전성기를 맞았다. 이후 ‘정 때문에’, ‘차표 한 장’, ‘네 박자’, ‘유행가’ 등 수많은 히트곡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1990년대 트로트 부흥기를 이끌었으며 故 현철, 태진아, 설운도와 함께 한국의 트로트 4대 천왕으로 꼽히기도 했다.
#무료 스포츠중계 #고화질 스포츠중계 #메이저리그중계 #mlb중계 #스포츠중계 #365tv #365티비 #스포츠무료중계
-
등록일 06:56
-
등록일 02.09
-
등록일 02.08
-
등록일 02.07'해뜰날' 부른 가수 송대관 별세댓글 5